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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USA

[KATUSA] 카투사 이야기(군생활)

by happylee_ 2024. 4. 22.

KTA에서 훈련을 잘 마치고 비로소 카투사가 되었다. KTA 수료를 하고 KTA 강당에 모여서 배치 결과를 기다렸다. 여러 인고의 시간 뒤에 나는 000 중대에 배치되었다. 처음 형들을 만나게 된 순간이었다.

 

이병

 

처음 형들을 만났을 때 너무 긴장했다. 다들 상병장이었고 엄청나게 여유로워 보였다. 시카이기도 한 ㅈㅈ형은 병장 2호봉이었고, 내가 지내게 될 방의 룸메이기도 했다. ㅈㅈ형은 정말 너무 착했다. 내가 적응하기 좋도록 이런저런 이야기와 맛있는 밥이나 간식도 잘 만들어줬다. ㅈㅈ형 덕분에 부대 분위기도 너무 적응을 잘 했다. 처음 카스바 갔을 때의 감동은 정말 엄청났다. 

 

처음 카스바 갔을 때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었다. KTA 기간동안 너무 매콤한 국물이 땡겼는데 그 카스바를 통해서 가슴이 울리는 맛을 만났다. ㅋㅋㅋㅋㅋㅋ

 

처음 부대에서 적응을 하고, 부대의 지리를 보고 여타 사항을 익히면서 지냈다.

 

나는 파일관리를 맡았다. 42A라는 보직을 받아서 부대의 인사행정을 관리를 해야하지만 CAC 엑세스가 없어서 그냥 일반적인 서류철과 파일 관리를 했다. 사실 군대에 오면서 조금 더 의미가 있고 멋진 일을 하고 싶었지만 허드렐일같은 일을 하게 되었다. 나중에도 이야기하겠지만 이러한 내 보직이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도 많이 했고, 다른 일을 꾸며보기도 했던 것 같다. 선임 따라서 체육관도 가보고 LT형 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도 하고 음식도 많이 시켜먹는 복에 겨운 이병 생활이었다. 다시말하지만 코로나 시기여서 훈련이나 출근도 제한되는 일이 많았고 그래서 정말 많이 쉬었고, 카투사의 엄청남을 느끼게 된 순간들이었다. LT형도 너무 편하게 잘 대해주고 차도 잘 태워주셔서 감사했다. 후에 LT형은 XO가 된다! ㅋㅋㅋ 이 때 많이 친해진 것 같다. SGT 계급도 못 외우고 지나가는 sgt에게 자동으로 살루트를 하는 이병 생활이 지나고 일병이 되었다 ㅋㅋㅋㅋㅋ 그 KTA 쪽에 있는 약장 바꾸는 곳에 가서 약장 바꾸고 가슴팍에 벽돌이 2개가 생기니 너무 신기했다.

 

일병

일병은 정말 과도기였다. 나 일병 1~2홍봉 때 ㅈㅈ형이 전역하였고, 3~4호봉 때 ㄷㅊ형과 ㅁㅅ형이 전역을 하였다. 사실 부대에 혼자 남으니 정말 힘들었다. 출근할 때 혼자하고 부대 일을 지대한테 보고하고 하는 일이 사실 일병 3~4호봉때 하기에는 좀 벅찼다. 이제 막 부대 생활이 익숙해지고, PT세션이나 다른 부대 사람들과도 익숙해지니 이제 형들이 갔다. 정말 처음 왔을 대 형들이 너무 잘 챙겨주고 여러가지 알려주고 마음가짐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잘 해줘서 고마웠다. 진짜 형들 전역하고 나니 정말 외로웠다. 부대에 가도 한국말을 할 사람도 없고 좀 혼자다보니 이래저래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때 미군애들이랑 많이 친해진 것 같다. 다른 부대 형들도 전역하는 거 보내고 이래저래 편하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조금 느꼈던 것 같다. 일병 6호봉 때 첫 후임이 왔다. ㅅㅎ이는 나랑 동갑이었고 너무 열의가 잘 보이고 열심히하고 재미있는 친구라서 재미있었다. 카스바도 데려가고 체육관도 데려가고 XO형이랑도 같이 놀면서 친해졌다. 부대갈 때 같이 출근할 사람이 있고 같이 밥먹을 사람 운동할 사람이 있다는게 너무 좋았다. 그렇게 상병이 되었다. 일병 6호봉 부터 엑팅 시카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부대 봉사활동이나 지역 초등학교와의 연합 교육 등 부대 외적으로 하는 활동들 소위말해 미군 리더쉽이나 한국군 리더쉽에 좋아하는 활동들을 계획을 해보려고 했다. 기억이 남는게 지역 초등학교에 미군이 방문해서 안보 교육이나 함께 미군 군 체험을 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계획을 작성했던 기억이 있다. 나름 한국군 허가, 교육청 허가를 받았고, 소위 형과 함께 실제 염작초에 방문해서 교장선생님과 실무 회의를 했던 기억이 있다. 실무 회의를 하고 험비 출입로 확보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미군 대대에서 불허가 떴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름 열심히 준비하고 이를 기점으로 중대장에게 이미지가 좋아져서 열심히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발표자료 만들고 공문 만들고 하는것이 재미있었다. 나름 이것이 '기획' 일의 시초였을 지도? 그리고 나름 일 쉽게 한다고 패스지를 만드는 파이썬 코드를 만들어서 그걸로 막 패스지를 한 2~3달 치를 한번에 만들었다. ㅋㅋㅋㅋㅋ 나름 공대생 티를 내봤다.

 

상병

상병 이윤서는 나름 상병이라고 이제 DFAC갈 때 어깨피고 갔다 ㅋㅋㅋ CPL이 되니 그래도 나름 NCO 레벨이라고 부대 회의 등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리고 상병 초즈음에 현타가 많이 왔던 것 같다. 계획이 무산되고 나서 실제적으로 나는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부대 내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친해진 애들을 토대로 서플라이나 정비창에 가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때 ㄱㅇ형이 왔다. 처음에 ㄱㅇ형이 나는 좀 어려웠다. 그래서 ㄱㅇ형에게 일부러 더 잘해주려고 했는데 이 모습들이 ㄱㅇ형에게 좀 부담스럽고 힘들게 느껴졌던 것 같다. 후임인데 내가 뭐라할 수 있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니까 그런 모습이 서로 감정적으로 좀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 오해를 풀고나니 너무 좋아졌다. 우리 부대 사람들끼리 같이 밥 먹고 놀고 하면서 정말 많이 친해졌다. 이야기도 많이 했고 부대에 가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든든한 사람들이었다. 이 때 쯤 코로나도 심해지고 여름이 되어서 날도 더워지다 보니 나도 좀 쳐졌던 것 같다. PT 를 안나가기도 하고 출근을 해서도 축 쳐저있거나 해서 미군 애들조차 요즘 리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아마 이때가 권태기처럼 스스로 어떤 일을 하는 지 모르고 정체성이 없어서 좀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우리 카투사들과 함께 놀았던 미군 애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잘 버틸 수 있었다. 

 

병장

 

나는 그 동안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훈련에 잘 가고 시카일을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노력을 인정 받아 조기진급을 하였다. 디팩에서 동기들을 볼 때 놀리는 맛이 쏠쏠 했다. ㅋㅋ 병장 이윤서는 나름 열심히 하려고 하였으나 으레 그렇듯 달달한 12월 연휴 4데이와 5데이를 아주 잘 즐겼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4~5데이가 예정되어있었다. 그 전에도 지속적으로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없이 부대 집합을 했는데 갑자기 중대장이 우리 크리스마스 외박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너무 화가 나서(미쳐서 폐급짓 on) 중대 패치를 뜯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외박증명서도 서명까지 받았는데,,,,, ㅋㅋㅋㅋㅋ 장난으로 부대패치를 뜯었지만 소리가 너무 컸고, 본부 하사가 나에게 drop을 시켰다. 다들 내가 얼마나 바랬는지 알았고 그래도 나름 부대에서 ace였기 때문에 그래도 잘 넘어갔던 것 같다. 그날 우리 부대 친구들과 함께 ㅅ을 마셨다. 그렇게 좀 달렸고, 필름이 끊겼지만 나중에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Fuck 000 Fuck 000 이렇게 배럭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미친놈이었다 ㅋㅋㅋㅋㅋㅋ

 

다음날 일어나서 속이 너무 안좋아서 저녁에 ㅊㅎ이랑 디팩에서 같이 밥을 먹고 어니언 스프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도 ㅊㅎ이가 있어서 외롭지 않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코로나에 걸렸다. 정기 코로나 검사에서 갑자기 코로나에 양성반응이 있다고 짐을 싸라고 했다. 짐을 싸고 그렇게 집단 격리소로 이동했다. 격리소에서는 꽤 재미있었다. 놀기도 많이 놀고 드라마도 보고 그렇게 했다. 격리 꿀팁이나 그런것도 작성하고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격리소에서는 모르는 중대 애랑 같이 격리되었는데 나는 카스바 배달 사주고, 그 친구는 파파이스 배달을 시켜줘서 많이 먹었다. 오히려 아픈 것보다도 그냥 재미있게 논 기억 밖에 없다.

 

그렇게 격리해제되고 시카도 이제 넘겨주고 전역 준비를 했다. 사실 격리기간과 코로나 기간을 통해 중대에서 이제 나를 찾는 리더쉽은 거의 없어졌다. 그렇게 없어질 준비를 잘했다.

 

CIF 턴인도 하고, 여러 리더쉽에게 인사도 하고, 한국 리더쉽에도 인사도 드리며 전역 준비를 했다.

 

중대에서 전역식을 준비를 해줘서 볼링도 치고 중대 사열을 받아서 전역을 했다.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모든 카투사의 순간순간을 잊지못할 것이다.

 

너무나 감사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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